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메이 덴노 (문단 편집) == 소개 == 일본의 제34대 [[천황]]. [[소가]]씨의 피를 잇지 않은 [[비다츠 덴노]] 계열의 황족 중에서 최초로 황위에 오른 천황이자 '''현 일본 천황 가문의 직계 조상이다'''.[* 조메이 덴노의 차남인 38대 [[덴지 덴노]] 사후에 '''진신(임신)의 난'''으로 39대 [[고분 덴노]]가 실각하면서, 조메이 덴노의 3남인 40대 [[덴무 덴노]] 계열로 약 100여년 간 이어지다가 덴지 덴노의 손자였던 46대 [[코닌 덴노]]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계보가 이어지고 있다. 즉, '''오늘날의 천황 가문은 모두 조메이 덴노의 직계 후손이다.'''] 비다츠 덴노의 아들인 오시사카노히코히토노오오에 황자(押坂彦人大兄皇子)와 그의 이복 여동생이자 아내인 누카데히메 황녀(糠手姬皇女) 사이에서 태어난 황자로, '''부모가 모두 비다츠 덴노의 자식인 강력한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 오시사카 황자는 비다츠 덴노 사후에 31대 [[요메이 덴노]]의 태자[* 단, 오시사카 황자가 요메이 덴노의 태자였다는 기술은 '''《[[일본서기]]》에만 보인다.''' 그리고 《[[고사기]]》에서는 천황으로 즉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시사카 황자의 혼인 및 가족관계가 대단히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어, 거의 천황에 준하는 위치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8세기 《일본서기》가 편찬되는 과정에서 당시 천황 가문의 직계 조상이었던 오시사카 황자를 높임으로서 조메이 덴노 계열의 집권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기술을 집어넣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로서 차기 황위 계승이 가장 유력했던 인물이었으나, 소가씨의 조정 내 영향력 확대와 황위 계승상의 우위를 확립하기 위한 대신 [[소가노 우마코]]의 공작으로 인해 결국 황위 계승이 좌절되었다. 아버지가 천황이 되지 못했고, [[스이코 덴노]] 즉위 연간에는 [[쇼토쿠 태자]]가 차기 황위 계승자로 낙점되어 있었기 때문에, 타무라 황자는 사실상 황위 계승상에서 거리가 먼 인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622년 음력 2월 5일에 쇼토쿠 태자가 사망한 이후에도 무슨 연유인지 '''[[스이코 덴노]]는 후계자를 정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스이코 덴노 사후에 황위를 계승할 후보자를 정하는 것을 놓고 조정 내의 여러 씨족들 간에 알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가필이 의심되기는 하나, 《부상략기》나 《성덕태자전력》 등 후대에 저술된 사료에는 쇼토쿠 태자가 죽기 전부터 타무라 황자가 부각되기 시작하는 기사들이 보인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쇼토쿠 태자 말년 즈음에는 조정 내에서 타무라 황자가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쇼토쿠 태자 또한 혈통상으로 완벽하고, 현실적인 힘을 갖기 시작한 타무라 황자의 황위 계승 가능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인정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쇼토쿠 태자와 타무라 황자는 촌수로 따지면 5촌 당숙-조카 사이로, 타무라의 아버지 오시사카노히코히토노오오에 황자와 쇼토쿠 태자는 이복형제인 비다츠 덴노와 요메이 덴노의 자식이었므로 4촌 지간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